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국세청
박물관 VR체험
로그인
회원가입
한국도량형박물관
박물관소개
조직 및 업무
박물관 시설안내
오시는 길 & 이용안내
전시
상설전시
야외전시
특별전시
박물관갤러리
소장품
소장품 검색
유물세부설명
기증상담
프로그램안내
교육프로그램
체험프로그램
관람/예약
전시해설
대관신청
자원봉사신청
커뮤니티
공지사항
박물관 컨텐츠
언론스케치
사진갤러리
당진문학관
문학관 소개
문학관 CI
문학관 전시
문학이야기
문학관 프로그램
내포학작은도서관
도서관 소개
도서 자료목록
도서관 프로그램
홈페이지 가이드
로그인
전체메뉴
로그인
회원가입
한국도량형박물관
박물관소개
조직 및 업무
박물관 시설안내
오시는 길 & 이용안내
전시
상설전시
야외전시
특별전시
박물관갤러리
소장품
소장품 검색
유물세부설명
기증상담
프로그램안내
교육프로그램
체험프로그램
관람/예약
전시해설
대관신청
자원봉사신청
커뮤니티
공지사항
박물관 컨텐츠
언론스케치
사진갤러리
당진문학관
문학관 소개
문학관 CI
문학관 전시
문학이야기
문학관 프로그램
내포학작은도서관
도서관 소개
도서 자료목록
도서관 프로그램
홈페이지 가이드
로그인
네이버 블로그
인스타그램
유튜브채널
한국도량형박물관
한국도량형박물관
한국도량형박물관
전시
소장품
프로그램안내
관람/예약
커뮤니티
당진문학관
내포학작은도서관
문학이야기
박물관소개
조직 및 업무
박물관 시설안내
오시는 길 & 이용안내
전시
전시
한국도량형박물관
전시
소장품
프로그램안내
관람/예약
커뮤니티
당진문학관
내포학작은도서관
문학이야기
상설전시
야외전시
특별전시
박물관갤러리
소장품
소장품
한국도량형박물관
전시
소장품
프로그램안내
관람/예약
커뮤니티
당진문학관
내포학작은도서관
문학이야기
소장품 검색
유물세부설명
기증상담
프로그램안내
프로그램안내
한국도량형박물관
전시
소장품
프로그램안내
관람/예약
커뮤니티
당진문학관
내포학작은도서관
문학이야기
교육프로그램
체험프로그램
관람/예약
관람/예약
한국도량형박물관
전시
소장품
프로그램안내
관람/예약
커뮤니티
당진문학관
내포학작은도서관
문학이야기
전시해설
대관신청
자원봉사신청
커뮤니티
커뮤니티
한국도량형박물관
전시
소장품
프로그램안내
관람/예약
커뮤니티
당진문학관
내포학작은도서관
문학이야기
공지사항
박물관 컨텐츠
언론스케치
사진갤러리
당진문학관
당진문학관
한국도량형박물관
전시
소장품
프로그램안내
관람/예약
커뮤니티
당진문학관
내포학작은도서관
문학이야기
문학관 소개
문학관 CI
문학관 전시
문학이야기
문학관 프로그램
내포학작은도서관
내포학작은도서관
한국도량형박물관
전시
소장품
프로그램안내
관람/예약
커뮤니티
당진문학관
내포학작은도서관
문학이야기
도서관 소개
도서 자료목록
도서관 프로그램
홈페이지 가이드
홈페이지 가이드
한국도량형박물관
전시
소장품
프로그램안내
관람/예약
커뮤니티
당진문학관
내포학작은도서관
문학이야기
로그인
문학이야기
문학이야기
이름
필수
비밀번호
필수
이메일
홈페이지
옵션
HTML
제목
필수
내용
필수
웹에디터 시작
> > > * 연암의 편지 내용을 먼저 소개하고, 주석(註釋)을 통해 그 내용을 심화(深化)합니다. > * 지난달에서 이어집니다. > > 중존*에게 > > >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는데 잘 지내고 있다니 위로되고 그리운 마음 한량없네. 나는 길에서 심한 무더위를 무릅쓰고 7일을 달렸는데 학질은 물러갔지만 치질이 몹시 심한데다 졸지에 수조(水操)까지 겹쳐 도무지 정신이 없네. 병선(兵船)과 방선(防船) 두 척은 선실에 바닷물과 뻘이 가득하고 수군과 노군(櫓軍)은 정원에서 태반이 부족하며 게다가 안흥목은 험한 바다인지라 바람을 잘 살펴 배를 부려야 하거늘 기한에 맞춰 몰고 오기가 어려울듯하여 고민이 많네. 이른바 고을 형편은 도무지 말을 못하겠네. 비록 돈*걷는 일은 강제로 물리쳤지만 쌀값이 흙처럼 싸서 앞으로 닥칠 일이 기둥에 부딪듯 하니 어찌해야 좋을지. > > 이방익의 전(傳)은 밀쳐 두고 있는 것이 아닐세. 비단 공무가 바빠서 만이 아니라 이방익이 유람할 때 적어 놓은 그 지나온 길과 고을 이름 등에 대해 허술히 할 수 없어서니, 아무쪼록 영재와 초정 두 벗과 더불어 급히 글을 엮어 보내주면 어떻겠나? > > 안동(安洞) 집에서 다른 데로 이사 가는 걱정은 면했는가? 염려가 많이 되네. 이만 줄이네. > > 정사년(1797) 7월 보름, 아우 지(趾) > > 보내는 물건 > 돈 두 냥 함께 보내네. > > 추신: 이 승지(李承旨) 경혼(景混)*이 자기가 기록해 둔 것을 안악(安岳) 관아에 내려 보냈는데 장차 찾아와 내 아이에게 보내겠다고 하지만 오래되면 잊고 내버려두기 쉬우므로 모름지기 아이에게 편지를 쓰게 해서 찾아오도록 하는 게 어떨지? 그 또한 내 아이를 알고 있기 때문일세. 전에 바다에 표류한 자 아무개의 일이 퍽 기이하던데 같이 기록하여 전(傳)을 지으면 좋을 걸세. 내가 이름은 잊었지만 그 사적이 자못 같더군. > > 편지의 겉봉에 ‘안동’이라고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이중존은 계산초당에서 나와 다시 소안동의 옛 집에 거처하고 있었던 것 같다. > > 연암은 초정과 영재에게만이 아니라 중존에게도 이방익에 대한 글의 초고를 부탁하고 있다. 어명에 따라 짓는 글이라 마음의 부담이 퍽 컸던 것으로 보인다. > > ‘전에 바다에 표류한 자 아무개의 일’이란, 장한철(張漢喆)의 일을 가리키지 않나 싶다. 제주도 사람인 장한철은 1770년(영조 40) 12월 25일 일행 29명과 함께 배를 타고 제주를 떠나 육지로 향하던 중 태풍을 만나 표류하다 유구(오키나와)의 무인도에 닿았다. 닷새 후 지나가던 안남(베트남) 상선에 구조되었으나 19명이 죽고 10명만 생환하였다. 장한철은 한문으로 된 《표해록》이라는 제목을 책을 통해 자신의 체험을 자세히 기술하였다. > > 이 편지에서는 ‘돈 걷는 일은 강제로 물리쳤다’고 했는데, 이는 ‘부당하게 백성들에게 돈 걷는 일을 없앴다’는 말로 풀이된다. ‘쌀값이 흙처럼 싸서’ 라고 말한 것은, 당시 월급을 쌀(녹미(祿米))로 받았는데 서울의 가족에게 생활비를 보낼 때는 녹미를 다시 돈으로 바꿔야 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 > > 큰아이에게(부임 초기에) > > > 보름날 새벽에 하인 둘을 보내서 ‘부임하여 평안하다’는 뜻을 알렸다. 뜻하지도 않게 경 저리 편으로 13일에 보낸 편지를 받아 읽은바 온 집안이 다 평안하다는 편지더구나. 안의와 비교한다면 아침에 출발해 저녁에 도착할 뿐만이 아니니 기쁘고 위로되는 나머지 가슴이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며칠 밤 이래 달빛이 낮과 같아 두 선비와 대청에 오연히 앉아 노래를 부르고 밤이 이슥하도록 농담을 했는데, 객지의 회포가 조금 풀리더구나. > > 빌려야 할, 융복(戎服)에 딸린 여러 물건들은 쭉 적어서 전편(前便)에 보냈으니 모름지기 잘 챙기는 게 어떻겠니? 도서석(圖署石)*은,비록 매끄러운 돌이라도 괜찮으니 약국에 물어봐 한 덩어리 보내줄 수 있겠니? 설탕은 남겨 두어 아이에게 주지 그랬니? 모두 도로 보낸다. > > 재차 보내온 조보(朝報)*는 초(抄)한 것을 또 초해 모양을 갖추지 못한데다 또한 문리(文理)가 통하지 않으니 모름지기 저리(邸吏)를 불러다 따끔하게 꾸짖고 다시는 써 보내지 말라고 엄하게 주의를 주는 게 좋겠다. 영남 및 여러 도(道)의 폄목(貶目)*은 적어 보내지 않은바, 정목(政目)*을 봐도 두서(頭緖)를 알 수 없으니 탄식할 만하다, 탄식할 만해. > > 종이 사정이 몹시 안 좋으니 갖고 있는 종이 두루마리와 편지지를 찾아서 보내 주면 어떻겠니? 네 동생은 『오례통고(五禮通考)』를 사고자 하는데 그 뜻은 가상하다마는 책값이 지금으로서는 나올 데가 없으니 동생으로 하여금 증락(曾樂)*과 의논하게 해 먼저 반값을 주는 게 좋겠다. > > 남초(南草)* 한 근은 관에서 정한 값이 4전인데 맛이 별로다. 행랑아범이 파는 남초는 어디서 사온 것이며, 값은 얼마냐? 대손(大孫)*으로 하여금 대여섯 근을 사오게 하여 좀 보내주면 어떻겠니? 자세한 말은 지난 편지에서 다 했으니 이만 줄인다. > > 정사년 7월 16일, 중부 > > 추신 : 저리(邸吏)가 쓴 돈이 얼마더냐? 그 건기(件記)*를 찾아봐 자세히 적어 보내는 게 좋겠다. 깁으로 만든 풍차(風遮)*도 잊지 말고 보내라. 믿을 만한 인편(人便)이 쉽지 않으니 모휘양*-초피로 만든 것-도 함께 보내는 게 좋겠다. > ---------- > 도서석 : 인장(印章)을 만드는 데 쓰이는 중국산 돌. > 조보 : 승정원에서 처리한 사항을 매일 아침에 기록하여 반포하는 관보(官報). > 폄목 : 관찰사가 해마다 두 차례씩 수령의 근무 성적을 상·중·하로 매겨서 중앙에 보고할 때 하등으로 평가된 이들의 명단. 이런 사람들은 벼슬에서 쫓겨났다. > 정목 : 관원의 임명, 해임, 그 밖의 중요한 기록한 문서. > 증락 : 누구인지는 모르나 뒤의 편지에 등장하는 한증락(韓曾樂)과 동일한 인물로 보임. > 대손 : 하인이나 청지기인 것 같음. > 건기 : 물품의 이름 혹은 금액을 적어 놓은 문서. > 풍차 : 겨울에 추위나 바람을 막기 위해 머리에 쓰는 두건의 일종. > 모휘양 : 모피로 만든 휘양. 머리에 쓰는 방한구의 하나로 목덜미와 뺨까지 싸게 되어 있다. > > 이 편지 내용의 분위기로 보아 면천의 생활이 조금 안정되어 가는 듯하다. 경저리의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단속하려는 태도도 읽힌다. > 『오례통고』 구입 건으로 계속 말이 오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마 열두어 냥 쯤 하는 책이었던 모양인데, 책값이 당장 나올 데가 없다고 한 것을 보면 이즈음의 연암 가(家)의 생활 형편이 녹록치 않았던 것 같다. > > 설탕 보내온 것을 아이에게 주라고 굳이 도로 돌려보내는 게 퍽 인상적이다. 당시는 지금과 달리 설탕이 아주 귀한 물건이었다. 연암은 담배를 좋아했던 모양이다. 면천 담배가 영 맛이 없다면서 행랑아범이 파는 담배를 좀 구해서 보내라는 말을 끝에 덧붙이고 있다. > > > 큰아이에게(또 쓰다) > > > 작년 가을 나의 화포(花布)* 두루마기를 유혜보(柳惠甫 : 유득공)에게 빌려줬는데 이번 수조(水操) 때 철릭* 아래에 입어야겠으니 즉시 찾아 보내 줬으면 한다. > > 누님*에게 돈 두 냥을 찾아 보내는데 언서(諺書)*를 쓸 줄 모르니 네 누이동생*에게 쓰게 해서 보내는 게 좋겠다. 광엽의 처에게는 모름지기 쌀 한 말로 존문(尊問)했으면 한다. 혹 개성의 인편에 편지가 오면 이번에는 잊지 말고 내게 보내렴. 제사는 몇 번이나 지냈느냐? > > 날씨가 아직 더워 구들막이 찌는 듯하니 애기 키우기가 퍽 힘들겠구나? 더군다나 방에 있는 것이 전부 애기가 입에 넣을 물건임에랴. 반드시 경교(京橋)*의 어린 여종을 빌려다가 정성껏 외랑(外廊)에서 돌보게 하고 안방에는 들이지 않는 게 어떻겠느냐? 귀봉(貴奉)*이는 술주정이 있는데 지금은 심하지 않니? 그는 술만 마시면 엉망이니 아이를 안지 못하게 해라. 웃는다, 웃어. > > 무더위를 무릅쓰고 내려왔더니 노독(路毒)은 아직 안 풀렸지만 몇 년째 그렇던 소갈증은 많이 감소했으니 참 다행이다. 수조를 위해 수영(水營)*에 가는 게 내달 2, 3일 사이니, 공주에 연명(延命)* 가는 건 20일 지나 바로 출발할까 한다. > > 유숙(幼肅)*은 근간 혹 왕래가 있느냐? 과거 볼 때 그 종이 값을 좀 도와주는 게 어떻겠니? 이 승지 경혼은 네 편지 받고 서신을 보내겠다고 허락했는데, 이 일은 중존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미 언급했으니 모름직 즉각 상의하여 처리하는 게 좋겠다. > ---------- > 화포 : 반물빛(검은 빛을 띤 남빛) 바탕에 흰 꽃무늬를 박은 무명. > 철릭 : 옛 무관의 공복(公服)의 하나. 고을원도 군사훈련을 할 때는 군복을 입게 되어 있음. > 언서 : 한글 > 누님 : 연암은 4남매 중 막내로, 누님이 두 분 계셨다. 이 시점에서는 큰누님이 이미 작고하셨으므로 여기서는 작은누님을 가리킨다. > 네 누이동생 : 연암은 2남2녀를 두었다. 맏이는 전주 이씨 종목(종목)에게 시집간 딸이고, 둘째가 종의이며, 셋째가 연안 이씨 겸수(겸수)에게 시집간 딸이고, 막내가 종채다. 여기서 말한 ‘네 누이동생’은 겸수에게 시집간 동생을 가리킨다. > 경교 : 누군지 모름. > 귀봉 : 하인이나 청지기로 보인다. > 수영 : 보령현 서쪽 20리 지점에 있다. 지금의 오천항이다. > 연명 : 새로 부임한 고을원이 감사를 처음으로 찾아가 뵙는 일. 당시 충청감영은 공주에 있었다. > 유숙 : 연암의 맏사위 이종목(1761~1833)을 말함. 훗날 문과에 급제하여 승지를 지냈음. > > 문하생인 유득공과 옷을 서로 돌려 입고 한다는 게 퍽 재미있다. 연암이 한글을 몰랐다는 건 익히 알려져 있는 사실인데, 이 편지로 그 점이 재확인된다. 광엽이는 정확히 무슨 일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계속 연암협에 드나드는 눈치다. > > 맏손자 효수에 대한 연암의 사랑은 각별하다. 아이를 잘 보는 어느 집 여종을 데려와 효수를 돌보게 하라는 등, 술주정이 있는 아무개에게는 아이를 안지 못하게 하라는 등, 세심하게 지시를 하고 있다. 이 편지의 내용으로 보아 연암은 몇 년 전부터 소갈증, 즉 당뇨병을 앓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편지는 그 겉봉에 “또 쓰다”라고 적혀 있다. > > > 큰아이에게(8월 초닷새에) > > > 윤암(綸菴)*과 광엽이 어제 낮에 들어갔으리라 생각되는데 이곳 소식을 자세히 전해 줬을 테니 궁금한 마음이 한번 풀렸으리라 여긴다. 그간 시원한 기운이 날로 깊어지는데 집안은 다 별일 없으며, 애기는 설사하던 것 나았니? 늘 잊지 못한다. 나는 밥 잘 먹고 잠 잘 자며, 가을을 맞아 몸이 꽤 회복되고 있는데, 다만 권태로운 증세가 날로 심해지니 어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 > 감사*가 도내(道內)를 순시하다 대흥(大興)*에 숙박할 예정이어서 거기에 물자를 조달해 줘야 할 참인데, 조반(朝飯) 등 접대하는 데 신경이 많이 쓰인다. 만일 말미를 얻을 수 있으면 보름 전에 도성(都城)에 들어가기를 기대하나 어찌 꼭 그렇게 되기를 바랄 수 있겠니? 성위를 권해 배천(白川)*에 가보라고 했는데 초이레에 엽이랑 함께 출발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백선의 이종동생 임애(林哀)*도 같이 간다지? 광주(廣州)의 전장(田莊) 또한 추수 감독할 사람이 없으니 몹시 한탄한다. > > 과거 볼 날짜가 점점 다가오는데 모름지기 과장(科場)을 사고 없이 잘 출입했으면 한다. 몹시 바빠 이만 줄인다. > > 정사년 8월 초닷새 낮, 중부 > ---------- > 윤암 : 이희경의 호. > 감사 : 당시의 충청 감사는 한용화(韓用和)였다. > 대흥 : 대흥현을 말한다. 지금의 예산군 대흥면에 해당한다. > 배천 : 연암가의 논과 밭이 이곳에 있었다. > 임애 : 임씨 성을 가진 사람인데 누군지는 알 수 없다. ‘애(哀)’는 모친상 중에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 > 연암이 표현한 ‘권태로운 증세’는, 고을 수령이 집무에 시달리다 보니 생활이 무미건조해져 마음이 황폐해지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증상을 말하는 게 아닐까 싶다. 연암은 안의에 있을 때 이런 경우 그림이나 글씨를 감상하며 마음을 풀고는 하였다. > > 이희경과 광엽이 면천을 다녀갔던 모양이다. 연암은 이희경에게 배천의 가을걷이를 좀 감독해 달라는 부탁을 했던 것 같다. 집안의 추수며 아들의 과거 등에 대해 세세히 마음을 쓰고 있다. > > > 큰아이에게(정사년 추석) > > > 편지를 받아본 날짜가 조금 오래되어 그립고 궁금한 마음 몹시 깊다. 하늘은 높고 해는 맑으며 서리 기운이 점점 다가오는데 집안은 다 별고 없느냐? 과거 볼 날이 가까우니 정신을 모을 일이며, 맹랑한 짓은 않겠지? 시험에 붙고 안 붙고는 관계없는 일이며, 다만 과장에 출입할 때 조심해 다치지 않도록 해야 할 게다. 나는 먹고 자는 게 못하지 않다. > > 휴가 허락이 떨어지면 나는 곧장 광주(廣州)의 선영*에 가 성묘하려고 제수(祭需)를 모두 마련해 놓았고 또 근현(勤峴)*에 있는 계부(季父)와 종형(從兄)의 두 산소에도 들러 소분(掃墳)하고자 해 제물(祭物)을 모두 싸 놓았건만, 가을철 공무가 한창 벌어져 있고 조정의 훈령 역시 지극히 엄하다는 이유로 홀연 휴가청원서가 반려되어 왔구나. 그래서 쭈구리고 앉아서는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데에 대해 낙담하고 있지만, 어쩌겠니, 어쩌겠어! 이제 불가불 내년 봄을 기약할 수밖에 없다. > > 영재와 초정에게부탁한 일은 어찌 되고 있느냐? 모름지기 즉시 찾아 부치게 하고 이번에도 혹 끝내지 못했거든 내기 이처럼 몹시 걱정하고 있다는 뜻을 전해 속히 이루도록 만드는 게 좋겠다. 성위는 어느 날 출발하며 임애는 같이 간다더냐? 성위는 어느 길로 가려고 하더냐? 자세히 적어 말해주지 않겠니? > > 요마적에 안(安) 사돈 모습을 보니 극히 점잖고 조용한 선비로, 분수를 지켜 안빈(安貧)하는 늙은 유사(儒士)더라. 애석하게도 그 둘째딸이 열다섯 시집갈 나이에 그만 모친상을 당해 지금 비록 탈상은 했으나 때가 지나 마땅한 혼처가 없는 바람에 큰 골칫거리라는 구나. 모름지기 네 친구 중에 널리 물어봐 신랑감을 두루 찾아보는 게 어떻겠니? > > 김거창* -거창까지는 530리라고 한다- 이 어제 아전 한 사람을 이리로 보냈는데 이곳에 있는 자기 전장(田莊)의 추수를 감독하게 하려고 해서다. 세상 사람들이 자기 일을 긴히 여김이 이와 같다. 접때 광엽이 귀경할 때 아전 하나를 붙여 보내지 않은 게 한스럽다. 뒤늦게라도 아전 하나를 성위와 임애에게 보내 배천 전장에 이미 들어갔는가의 여부와 관계없이 이놈*을 입회시켜 광엽을 찾아가 그 거취를 정하도록 하면 어떻겠니? > ---------- > 광주의 선영 : 당시 연암의 조부인 박필균(朴弼均)의 묘가 광주의 근현에 있었다. 이 묘는 훗날 양주로 이장되었다. > 근현 : 지금의 광주시 초월면의 고개 이름이다. > 김거창 : 김씨 성의 거창 군수를 가리킨다. 누군지는 모른다. > 이놈 : 아전을 말한다. > > 아들 과거 볼 일에 대해 몹시 신경을 쓰고 있다. 당시 과장(科場)의 질서가 극도로 문란하여 떠밀려 넘어져 사람들의 발에 밟혀 죽거나 다치는 사람이 속출하였다. 특히 과장에 들어갈 때나 답안지를 제출할 때 사람들이 우르르 한꺼번에 몰리는 바람에 불상사가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연암은 아들에게 “시험에 붙고 안 붙고는 관계없는 일이며, 다만 과장에 출입할 때 조심해 다치지 않도록 해야 할 게다”라고 특별히 주의를 준 것이다. > > 연암의 조부 박필균은 박필주와 아주 가깝게 지냈으며, 자신의 막내아들을 그 양자로 들여보냈다. 연암은 저명한 성리학자였던 박필주를 집안을 빛낸 어른으로서 몹시 추앙하였다. > > 이방익에 대한 글 건으로 연암이 아주 초조해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영재와 초정에게 빨리 초고를 보내게 할 것을 닦달하고 있다. > > 연암은 거창 군수가 아전을 보내 면천에 있는 전장의 추수를 감독케 하는 것을 보고는 자기도 배천에 아전을 하나 보내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아마도 이는 당시의 관행이었던 듯하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런 행위는 결코 떳떳한 일은 아니다. 편지의 묘미는 바로 이런 걸 읽는데 있다. 즉 자기검열 없이 개진된 그 사람의 속내와 성정(性情)을 들여다보는 데 있는 것이다. > > > 큰아이에게 > > > 사람과 말이 23일 낮때에 돌아와, 편지 받아 보고 잘 지냄을 알았다. 하지만 효수가 한 달 동안 설사를 하고 감기 중 몸에 반흔이 점차 생긴다니 염려를 늦출 수가 없구나. 다행히 조금 낫더라도 모름직 잘 돌보는 게 어떻겠느냐? > > 『오례통고』의 첫 책함(冊函)을 대략 점검해보니 정말 좋은 책이더구나. 뇌아(賴兒)가 이 책을 얻자 춤을 출 듯이 기뻐했다고 하나 책을 싸놓고서 펼쳐보지 않는 건 어째서냐? 비록 한 번 섭렵하더라도 자세히 궁구하지 않는다면 수박 겉핥기나 후추 통째로 삼키기와 워가 다르겠니? 유생(柳生)*의 무리에게 자랑할 건 없으니 유(柳)는 깊은 이치를 알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요 진중한 기상이 적으니 단지 책을 빌어 박식함을 자랑하길 좋아할 뿐이다. 모름지기 한증락(韓曾樂)*의 무리와 참구(參究)해 가며 읽고, 글 뜻이 잘 통하지 않는 곳은 외삼촌께 여쭤봐 실효를 다하도록 함이 옳다. > > 방목(榜目)*을 베껴 보낸다는 건 어찌 됐느냐? 하인 석(席)이는 과연 아전 유(兪)와 함께 떠났느냐? 놋쇠로 만든 초통(燭筒) 한 개를 사서 보내주는 게 어떻겠니? 값은 불과 1전이다. > > 상납리*가 24일 떠나므로 추가로 편지를 쓴다. 저리(邸吏)가 올린 물목(物目)*을 보니 첨정댁(僉正宅)에 드릴 제수용(祭需用) 돈 열 냥이라는 조목이 있던데 무슨 제수인지 모르겠다. 몰염치함이 극에 달했거늘 주지 않는 게 옳다. > > 「이방익전」은 이번 인편에 고대했는데 또 오지 않으니 탄식할 만하다, 탄식할 만해. 혜보(惠甫)는 전연 돌아보지 않고 초정이 혼자 감당하고 있느냐? 내게 좀 자세히 말해 줬으면 한다. > ---------- > 유생 : 박종채의 처삼촌 유화(柳訸, 1779~1821)를 가리키지 않나 여겨진다. 박규수는 어릴 적 그에게서 글을 배웠다. > 한증락 : 누군지 미상. 앞의 편지에서 나온 ‘증락’과 동일인으로 보인다. > 방목 : 과거에 급제한 사람의 성명을 적은 명단. 사마시(司馬試)의 경우 ‘사마방목’, 문과(文科)의 경우 ‘문과방목’이라고 함 > 상납리 : 조세 바치는 일을 맡은 아전. > 물목 : 물품 목록. > > 이 편지는 그 겉봉에 ‘23일 밤에 추가로 쓴다’라고 적혀 있다. > 마침내 『오례통고』를 산 모양인데, 종채가 책을 사 놓기만 하고 읽지 않는데 대해 나무라고 있다. ‘수박 겉핥기’ ‘후추 통째로 삼키기’라는 말은 『연암집』에 수록된 「영처고서(嬰處稿序)」라는 글에도 보인다. 이 글은 이덕무의 문고(文稿)에 서문으로 써준 내용이다. > > 유생(柳生)에 대해 평한 말을 보면, 연암은 피상적으로 지식을 추구하거나 기상이 진중하지 못하거나 책 많이 읽은 걸 자랑하며 박식을 뽐내는 인간 타입은 썩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 > ‘아전 유(兪)’ 운운한 것으로 보아 기어코 배천 전장에 면천의 아전 한 사람을 파견한 모양이다. > > 아전들이 첨정댁의 제수용 돈으로 할당해 놓은 열 냥은, 추측하건대 면천 고을 일을 잘 봐 달라는 뜻으로 주려고 한 일종의 뇌물이 아닐까 싶다. 연암은 몹시 몰염치한 일이라며 안 주는 게 옳다고 말하고 있다. 연암다운 강직한 면모를 읽을 수 있다. > > 그리도 기다리던 이방익에 대한 글 초고가 이번 인편엔 오리라 기대했던 듯 한데 이번에도 또 오지 않자 연암은 급기야 장탄식을 하고 있다. > > 연암의 개인적인 편지는 그 후에도 계속되었을 것이지만, 현재 발견된 것으로는 이 편지가 마지막이다. (끝) > >
웹 에디터 끝
링크 #1
링크 #2
파일 #1
파일 #2
자동등록방지
숫자음성듣기
새로고침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취소
목록보기
작성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