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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야기

[스토리텔링 5화] 남정현(南廷賢)의 작품세계 - 문학 평론가들의 시각에서

작성자한국도량형박물관
등록일21-10-08 09:18
조회수180
① 현실을 초극(超克)하는 집요한 풍자정신/구중서(문학평론가)

  남정현은 해방 후 70년대까지의 문단에 있어 가장 뛰어난 풍자작가라 할 수 있다. 그는 1958년 「自由文學」지에 단편 ‘경고구역’이, 1959년 ‘굴뚝 밑의 유산’이 추천되어 데뷔했다. 1961년에 중편 ‘너는 뭐냐’로 동인문학상을 받은 그는 1965년 「現代文學」지에 단편 ‘분지(糞地)’를 발표한 것이 반공법에 저촉된다 하여 법정에 서기도 한다.

  항상 날카로운 풍자와 우의적 수법을 쓰는 이 작가는 사회 현실의 전체 상황에서 모순을 보는 데 예리한 시각을 가지고 있어 때로는 지나치게 냉소적인 자세를 드러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능란하게 다듬어진 경쾌한 문장을 따라 그의 집요한 풍자를 읽어가다 보면 이것이야말로 근본적으로 속시원한 이야기라는 점과 역사 안에서 투철하게 진실을 추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그의 문학세계의 본색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허허선생Ⅰ’ ‘허허선생Ⅱ’ ‘허허선생Ⅲ’이다. 이것은 그가 1973년에 발표한 연작이다. 소설 서두가 매우 환상적인 데다가 작위적인 인상마저 있어 처음에는 독자를 아리둥절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주인공의 하나요 화자인 ‘허만’, 즉 ‘허허선생’의 장남이 지니는 정서의 건강도는 지극히 정상적이다. 주인공 허허선생은 체제 자체라든가 최고권력가를 상징하는 존재가 아니고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구체성을 띠고 있다. 즉 원래 재계를 주름잡던 사람으로서 모 정당의 실력자로 등장하는 단계에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소설은 관념적이거나 전체적인 도식성을 벗어나 있다.

② 상황악(狀況惡)에 대한 끈질긴 도전/김병걸(평론가)

  남정현 작품집에 수록된 작가의 연보에 따르면 남정현은 1933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자칭 신령(神靈)이라는 어떤 노인의 꼬임에 빠져 가출, 그와 함께 유랑 걸식하다가 한만 국경(韓滿國境) 근처에서 순경에게 붙들려 고아원에 수용된 일이 있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인지 아니면 작가 자신이 꾸며 만든 이야기인지 알 수는 없으나, 아무튼 남정현은 어릴 적부터 남다른 감수성과 공상력을 지녔던 것만은 틀림없는 일인 것 같다.

  현실과 자신이 설정한 세계관, 즉 이념과의 사이에 가로놓인 그 좁힐 수 없는 거리의 지평선을 향해 남정현은 처음부터 부정하며 도전하는 작가로 등장했다.

  1965년 「현대문학」 3월호에 발표한 단편 ‘분지’가 본인도 모르게 북한의 잡지에 게재되자, 남정현은 ‘반공법’에 저촉되어 입건 구속되었다가 67년 서울고등법원에서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또 1974년 4월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되었다가 8월에 긴급조치 해제로 석방되는 등 파란만장의 작가생활을 겪어 왔다.

  이렇듯 사연과 곡절이 많은 생활은 물론 작가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것으로 보여지지만, 깊이 따지고 보면 그것은 한국적인 상황이 강요한 데서 빚어진 결과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적 시대 상황 때문에 남정현은 기구한 운명을 타고 세상에 나왔다.

  남정현의 소설이 과연 문학이라는 이름에 값어치를 하는가, 혹은 그것이 문학만이 가지는 어떤 일정한 업적을 이룩했는가, 그는 도식주의의 올가미로 스스로를 구속하고 있는 작가는 아닌가 하는 따위의 그간 한국 문단에서 빚어진 시비나 비난을 유보하고, 어쨌던 그가 문학 작업 때문에 받은 고통과 부자유는 우리 문학의 보행이 식민지시대에 있어서처럼 지금도 문학 외적인 힘의 파급작용으로 평형을 잡지 못한 매우 불안스런 상태에 놓여 있다는 증거가 된다.

③ 남정현은 천부적 이야기꾼/김병욱(평론가)

  소설이 하나의 이야기라면 작가는 이야기꾼일 수 밖에 없다. ‘들려주느냐’, ‘보여주느냐’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소설은 이야기의 형식을 취한다. 남정현의 소설은 철저하게 들려주는 형식에 속한다. 그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우리는 지루한 줄 모르게 그의 이야기에 빨려들곤 한다. 그만큼 그는 독자들을 감동시키는 힘을 가진 이상한 작가이다.

나는 남정현을 만날 때마다 그 차분한 가라앉은 낮은 목소리에서 그의 작가적 저력을 느끼곤 한다. 조용하면서도 인생을 예리하게 투시하는 그 선한 눈동자는 비록 두툼한 안경알 너머에 가리워져 있더라도 한시도 관찰을 멈추지 않고 있음을 그를 아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느끼고 있다.

  남정현은 정직하고, 용감하고, 현실을 정확히 볼 줄 아는 드문 작가이다. 우리는 그의 소설을 대할 때마다 충격적인 반응을 일으킬 때가 많다. 진실을 외면하고 더군다나 그것을 왜곡시키는 현실에서, 가치가 전도된 현실을 여지없이 폭로하는 작가정신을 가진 그는 확실히 독특한 존재임에 틀림없다.

  그의 작품세계는 현실에 대한 풍자, 고발, 풍유, 과장으로 일관되어 있다. 초기의 대표작 ‘너는 뭐냐’에서부터 줄기차게 지속되어 온 것이다. 그는 요설과 시니시즘에 가득찬 끈적끈적한 문체로 뒤틀린 현실을 여지없이 풍자하고 있다.

  ‘허허선생’ Ⅰ과 Ⅱ는 부자(父子) 간의 윤리관계를 통하여 비정상적인 세태를 풍자하고 있다. ‘허허’라는 단어가 암시하고 있듯이 그저 웃을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작가의 풍자가 작품 전편에 넘치고 있다. 아직도 가부장적인 요소가 짙은 우리 사회를 놓고 볼 때 ‘허허선생’의 세계는 충분히 리얼리티를 갖는다.

  금력과 권력을 쥐고 있는 ‘허허선생’의 눈에는 그의 아들은 정신병 환자가 아니면 가련한 인간으로 파악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누가 진실한 인간인가를 현명한 독자들은 곧 알아차리게 될 것이고 그러한 가치의 전도(轉倒)를 통해 우리에게 인간의 진실을 역설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거짓과 위선의 가면에 혐오감을 가지는 것은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공통점이다. 뒤틀린 부자 간의 관게는 한 집안의 문제만이 아니다. ‘허허선생’과 같이 사회의 명사일 때 문제는 가족의 범위를 떠나 사회로 확산된다. 그러기 때문에 나레이터를 아들로 설정했다는 것은 적절한 것이다.

  독자는 ‘나’의 눈을 통해 이 사회의 은폐된 진실을 보게 된다. 우리가 남정현의 소설을 읽게 되는 것이 바로 이러한 데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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