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백성들에게 위안을 주는 이야기책
나라를 빼앗긴 채 일제의 갖은 수탈로 절대 빈곤을 피할 수 없었던 조선 백성들에게도 가끔은 그런 것들을 잊을 수 있는 시간이 있었던 것 같다. 우리의 이야기를 ‘산파조’로 읽어 나갈 수 있는 고전소설의 등장과 대중화가 그것이다. 책 한 권이면 근동의 여러 마을이 돌려가며 읽을 수 있어서 고단한 삶 속에서도 여간 위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해방이후에도 한국전쟁 등이 가져온 민족적 혼란은 국민의 생활을 냉큼 개선해주지는 못했다. 그때도 이런 이야기책들은 다소나마 위안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재미난 이야기 거리로 웃음을 자아내게 했을 것이다. 두루 읽혔던 여러 작품이 있었지만 그중에서 〈춘향전〉과 〈사명당전〉을 선정하여 앞 뒷이야기를 풀어본다.
2. 입으로 읽는 이야기 〈열녀춘향슈졀가라〉
〈열녀춘향수절가〉는 19세기 후반에 완판으로 출판된 고전 〈춘향전〉의 대표적인 ‘이본(異本)’이다.
춘향의 신분이 ‘원본’의 기생에서 ‘이본’에서는 성 참판의 서녀로 설정되어 신분이 상승되었고, 춘향과 월매·향단의 기능과 인간상이 특징 있게 부각되어 있다.
〈열녀춘향수절가〉는 지난 1906년 전주의 서계서포(西溪書鋪)에서 간행된 ‘완서계신판(完西溪新板)’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완’은 전주의 옛 지명인 ‘완주’를, ‘서계’는 ‘서계서포(西溪書鋪)’의 줄인 이름이고, ‘신판(新板)’은 오늘날의 ‘신판(新版)’과 같은 뜻이다.
조선 후기 이후의 ‘서포’는 책을 발간하고 동시에 판매를 하던 인쇄소 겸 서점이었다. 오늘날의 출판사와 총판을 합친 형태쯤 된다. 그리고 이런 ‘서포’는 한양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지방의 도시에서도 성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양의 아전 출신들이 대거 지방으로 내려가 ‘서포’를 열었기 때문이다. 이 책 〈열녀춘향수절가〉도 호남의 제일 도시인 전주에서 발행된 것이다. 이 당시 전주에는 서계서포(西溪書鋪) 외에도 다가서포(多佳書鋪), 문명서관(文明書館), 완흥사서포(完興社書鋪), 창남서관(昌南書館), 칠서방(七書房), 양책방(梁冊房) 등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즈음에 인근의 다가서포에서는 행곡본 천자문(杏谷本千字文, 1916)을, 칠서방에서 사요취선(史要聚選, 1916) 등을 발간했다. 또 한글판 고전소설뿐만 아니라 교육용 도서, 생활백과용 도서, 의학서, 역사서 등 다양한 종류의 서책이 만들어져 전국에 공급됐다고 한다.
3. 판권제도의 정착과 서계서포의 활약
‘서계서포’에서 발행한 여러 책의 간기(刊記)에 ‘서문외(西門外)’라는 글씨가 보이고 사용한 고무도장에도 ‘全州郡 西門外 石橋西邊/西溪書鋪/主卓鐘佶’(전주군 서문외 석교서변/서계서포/주 탁종길)이란 주소와 출판소, 주인의 이름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이 무렵에는 이미 ‘판권제도’가 정착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판권의 표기방법은 대체로 비슷했는데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少微家熟點校附音通鑑節要卷之十三’ 道光十一年(1831) 辛卯八月日 西門外開板 崔永
(소미가숙점교부음통감절요 권지13 도광11년(1831) 신묘 팔월일 서문외 개판 최영)
일반적으로 판매용 서책인 ‘완판방각본(完板坊刻本)’의 시작은 〈동몽선습(童蒙先習)〉이고 그 발간연도를 1714년쯤으로 보고 있다. 간기에 ‘서문외’라고 쓰인 책들은 대체로 ‘서계서포’에서 발행한 책으로 이해된다. ‘서계서포’가 명시된 책들은 대체로 1800년대 초반과 중반에 많이 발간된 것들이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어정규장전운(御定奎章全韻), 1860〉과 〈간독정요(簡牘精要), 1861〉 등이 있다.
‘서계서포’에서는 1800년대부터 1911년까지 한글 고전소설인 〈화룡도〉를 비롯하여 〈조웅전〉, 〈유충열전〉, 〈심청전〉, 〈초한전〉, 〈소대성전〉, 〈장풍운전〉, 〈열여춘향수절가〉, 〈이대봉전〉, 〈구운몽〉, 〈삼국지〉 등 17종의 고전소설을 찍어냈다. 이 서점에서 발간된 소설이 아닌 판매용 책은 21종에 이른다. 이 서책들을 원본으로 삼아 현재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중·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가장 많이 오른 소설은, 판소리계 소설인 〈춘향전〉, 〈심청전〉, 〈토별가〉 등이다.